입을 열면 눈이 빛났다. 그가 꺼내는 말에는 뻔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것도 아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자신의 마음과 같지 않을 땐 표현을 가다듬었다. 그가 매일 만지는 전통섬유의 촘촘함과 어딘지 닮은 대화.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열정은 그 촘촘함 사이에 배어 모시에 비치는 가을 햇살, 그리고 바람처럼 환하고 시원했다. 섬유 예술을 하면서 잊을 수 없던 추억을 되새길 때는 모든 감각에 남아있는 기억을 총동원했다. 동료가 좀처럼 많지 않은 전통섬유 분야의 전문가가 이토록 공유에 능숙하다는 것은 의외였다. 공유에 대한 목마름 조차도 느껴졌다. 하지만 지나치는 것은 없었다. 평정과 열성 사이 균형잡기에 타고나 보였다. 대화도 삶도. 오랜 시간 섬유의 올을 바르게 맞춰온 그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가 지금껏 짜온 직물 수십 필의 세월을 십 년이라는 단어만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불충분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우리 섬유를 더 오래 바라보고 기억하기 위해 그의 현재는 존재한다. 우리 문화유산을 지속하기 위해 그가 지나온, 지나고 있는, 그리고 더욱 확장되어 다가올 지금들을 담았다.



지금을 만든 지금들

그는 원래 손으로 만드는 활동에는 관심이 없었다. 뜨개질, 자수는 물론 어릴 적 뭇 아이들의 놀이였던 인형 옷 갈아 입히기조차 즐기지 않았다. 학부에서는 중어중문학을 전공했다. 그런 그가 직물을 짜게 되었다. 당연히 섬유예술을 업으로 삼게 된 과정도 남다르다. 그는 낯선 곳에서도 겁먹지 않는 여행자였다. 중국 소수 민족 거주 지역이나, 인도, 서아프리카, 터키 등을 여행하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품을 한자리에 쏟아냈다. 천으로 만든 것, 천을 염색한 것, 섬유라고 불릴만한 것들이었다. 큰 뜻 없이 예뻐서 샀던 물건들. 그 사물들이 앞으로 그가 하게 될 일을 말해주었다. 터키 여행 중에는 베 짜는 작업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책이나 영상에서가 아니라 코앞에서 실제로 목격한 첫 순간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동네에서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베 짜는 모습을 그는 한참 동안 바라봤다. 베틀과 물레가 멋져 보여 단순히 직기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베 짜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직조 과정처럼 한 발 한 발 전통섬유에 다가갔기에, 그에게 이 직업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의 순간에 하고 싶던 소소한 목표를 실행했던 것뿐이다. 염색한 천이 예뻐 보여서 자연염색을 배우러 다녔고, 옛날에는 집에서 직접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말을 듣곤, ‘손재주 없는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입했다. 직물 생산하는 지역을 조사했고, 무작정 갔다. 그게 국내든 해외든. 시장에서 직접 만들어 팔고 있는 사람에게 배우고 싶다고 손을 내밀었다. 현지에서 수소문해 또 다른 지역을 소개받는 식으로 여행을 이어갔다. 허탕도 쳤고, 운 좋게 제대로 배우기도 했다. 돌아와서는 우리 섬유를 모시, 명주, 무명, 삼베 순으로 배웠다. 가르쳐 줄 사람이나 교육기관이 특별히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전국을 다니며 장인들을 찾아 어깨너머로 보기 시작해서, 작업을 거들 수 있게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네 가지 직물을 다 배우고 나니 6년이 흘러 있었다. 시작부터 얼마큼의 시간이 걸릴 거라는 계산은 없었다. 그는 그렇다. 끝을 향해, 결과를 위해 달리기보다는, 지금에 집중하는 사람. 매일의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김보연을 만들었다. 자아 발견, 남다르게 사는 법에 집착하는 요즘 사람들의 고민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가장 단순한 방법. 마음속 작은 움직임에 귀 기울이기, 지금 할 수 있는 것만 해보기, 그렇게 모든 지금에 성실히 임하기.



원단, 그 이상의 아름다움

그는 전시를 목표로 작업하지는 않았다. 베 짜는 행위와 스스로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 그런 몰입의 결과로 완성된 베를 바라볼 때의 감정을 사랑한다. 한 번은 베를 가르쳐주던 할머니가 다리를 다쳐 베틀을 차려놓고도 작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일년이 되도록 짜여지지 못하고 있던 베를 그가 짜기 시작했다. 굉장한 몰입을 경험하며 쉼 없이 108m를 짰다. 그렇게 완성된 길고 고운 결을 보고 있자니 문득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노고와는 별개로 베라는 직물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이렇게 작업을 마친 것으로 끝내버리면 그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그게 아쉬웠다. 끝내 전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천으로 거래되고 마는 원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가진 미(), 재료 이상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었다. 들여다보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직물을 짜는 일까지만 한다. 만든 직물을 변형해서 다른 사물을 만드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완성이기 때문에. 하지만 전통섬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한 번이라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다. 우란문화재단과의 길쌈워크숍도 같은 맥락에서 참여를 결심했다. 한산모시를 접할 가능성이 낮은 다른 분야의 디자이너, 작가들에게 모시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감동까지 공유하는 밀도 있는 계승

할 줄 아는 것을 직접 하는 것과, 남을 하게끔 만드는 것은 다르다. 그에게 있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스스로 작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혼자 하는 작업을 선호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전통섬유예술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누군가 자발적으로 전통섬유를 배우고 싶어 한다면,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겪었던 수고를 덜어주고 싶어졌다. 진입장벽을 낮춰 전통을 계속 굴러가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희원을 품게 됐다. 다만 전통이라는 단어에 따라붙는 선입견. 보존해야만 하는 옛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현대인의 일상에서 사용하기는 무리라는 이미지가 있다는 게 그가 풀어내야 할 과제였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스며들지 못하고 따로 겉도는 전통과 문화유산은 방치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참여자가 모시 길쌈의 전 과정을 경험하고, 현대적 시각을 더해 모시로 작품을 만드는 이번 워크숍은 그에게 특별했다. 전국 면면촌촌의 장인들을 섭외해 최상의 팀을 꾸렸고, 덕분에 참여자들은 모시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다른 성격과 작업 스타일을 가진 그들이지만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모두 비슷한 감정과 감동을 느꼈다. 그런 것들이 다른 작업물로 표출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참여자들의 열정과 호기심, 깊이 고민하는 자세를 보면서 자칫 느슨해질 수도 있었던 스스로의 마음도 다시금 꼿꼿이 세웠다. 그는 앞으로 전시에 조금 더 공들일 생각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직물이 담고 있는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의 다양한 표현을 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발견했다. 전통 베 자체를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전시를 통해 전달될 수 있기를. 우리 베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예술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장이 되기를, 그는 바란다. 발로 밟으며 걷듯이 한 걸음 한걸음 가야 하는 베 짜기. 그는 앞으로도 자신 앞에 놓여진 한 발 한 발을 찬찬히 걸어낼 것이다. 그의 실 한 올 한 올에 담긴 세월, 정성과 후회, 감격 등 단순한 단어의 나열로는 다 표현해낼 수 없는 그 감정들을 사람들과 오롯이 공유하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