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잠시 자리를 비운 늦은 오후, 그들을 만났다. 연극 ‘요정의 왕’ 7회 차 공연을 앞둔 참이었다. 3명의 연출부와 5명의 디자이너부로 이루어진 배우 없는 극단. 극단 청년단은 2년 전 우란문화재단을 만나 ‘요정의 왕’이라는 작품에 파고들었다. 2년간 나눈 수없이 많은 질문과 대화, 그 안의 고집과 변화를 여섯 번의 무대에 올리고, 이제 두 번의 무대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오늘이 몇 회째라는 걸 특별히 의식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어제 하던 일을 이어하는 성실한 직장인의 하루처럼, 좋은 연극 경험을 관객과 나누고자 하는 당연한 날.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그들에게 문득 환상의 순간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연극 ‘요정의 왕’에서처럼 ‘적을 피해 잠시 이 곳을 지나는 요정인데, 우리의 왕이 되어달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하려다, 말을 꿀꺽 삼키고 대화를 시작했다. 평범한 시작이었지만 현실과는 달리 너무도 타당하고 마땅해서 오히려 환상적이었던 그들과의 대화를 전한다.



실패가 허락되는 기간, 7년

처음 극단을 시작하며 7년이라는 기간을 설정했다. ‘인고의 시간 끝에 대성하고 말리라’는 대찬 결심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일종의 데드라인 같은 거였다. 7년간은 실수하고 부족해도 괜찮기로 했다. 하지만 결코 시간을 핑계 삼아 연극을 게을리하거나 실패를 합리화하지는 않았다. 매일의 시도에서 축적되는 부족한 모습에 맞섰다. 그렇게 팀으로서, 개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작업 근육을 만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혼란의 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이제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마음이 엄습할 때마다 단원들은 서로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신체 한 부분에 에너지가 부족하면 주변의 근육이 힘을 보태주는 것 처럼, 그들 역시 서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북돋아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자연스러운 팀워크가 쌓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누군가가 ‘극단 청년단’이냐고 소속을 물으면 망설였다. ‘같이 하긴 하는데, 정식 단원은 아니고 객원 같은 거’라고 답했다. 뜻이 맞고 서로 좋아 함께 일하고 있는 그들에게 소속과 비소속의 경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좋은 날과 몇 번의 위기를 겪은 지금, 이제는 누구나 당연한 듯 답한다. ‘저는 극단 청년단의 OOO입니다.’



종합예술로서의 연극을 한다는 것

스태프 프로덕션. 극단 청년단을 가장 짧고 적확하게 표현해주는 말이다. 반면 디자인과 기술을 과시하는 연극을 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심어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무대에서 해명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극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인상을 기술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한편, 관객이 그 기술적 전환점들을 눈치채지 않고 오로지 배우와 드라마에 집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극단 청년단의 최근작인 ‘요정의 왕’에는 무대, 조명, 음향 등의 변화가 수백번 이상 이루어진다. 그 많은 변화를 주면서도 관객이 오로지 이야기에만 몰입하게끔 기술적 성숙도를 갖추는 것이 종합예술로서의 연극이 가져야 할 태도 같다고 그들은 말한다. 사람이 가장 숨쉬기 편한 온도와 습도를 조성하듯 미세하고 예민한 감각 말이다.







아무런 큐사인도 없던 순간, 이름 없는 감정의 교감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번 연극 ‘요정의 왕’에서 단원들이 꼽은 최고의 장면은 기술적인 큐사인이 단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순간이었다. 주인공 샤드록이 피니어스와 커피를 마시며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을 읊조리는 장면, 그곳엔 대사와 연기만이 있었다. 클라이맥스도 아니고, 역동적인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는 고요한 장면이었지만, 인물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커다란 감정의 진폭을 포착한 장면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일상적이지만 개인에게는 일상적이지 않은 순간에서 의미를 찾곤 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그렇다. 대단하고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 삶을 살지 않아도, 큰 사건을 겪은 것이 아닌데도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사랑, 동정, 시기, 분노처럼 유명한 단어로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감정. 하지만 누구나 이해하는 정서를 통해 관객과의 교감에 성공할 때 그들은 가장 연극적인 무대를 만들었다고 느낀다. 막이 오른 뒤부터 꾸준히 이루어진 기술적 효과들이 관객에게 작용해왔기에, 신호를 멈춘 순간 대사 하나만으로도 정서가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순간을 위해 그들은 공연 준비과정에서도 7~10시간 동안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쉼없이 넘겨보며, 모든 큐를 점검한다. 그렇게 얻어지는 연극적 만족감이 스태프 프로덕션이라는 구성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는 순간

연극에 대한 그들의 지향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환상이라는 단어가 이전과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현실과는 동떨어져있다는 뉘앙스, 자기도 모르게 가지게 된 그 이미지로만 사용되는 ‘환상’이라는 단어의 억울함 같은 것이 느껴졌달까. 어쩌면 환상은 현실이란 비교 대상에 의해 이름 붙여진, 또 다른 현실로서 공존하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눈에는 특별해 보이지만, 당연하고 기본적인 가치를 향한 연극 활동을 추구하는 그들의 행보 또한 그런 의미에서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것이 환상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기꺼이 현실이라 바꾸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 읽고 마리라’ 책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곤 자꾸만 미루게 되는 책 한 권을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내일은 읽어야지’하며 책장 앞을 스쳐지나고, 누군가는 바로 꺼내들 것이다. 극단 청년단은 사람들의 그런 책들을 대신 꺼내들어 차근차근 건네주는 극단이다. 바로 옆에 있지만 누구도 먼저 손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과제들, 그렇게 삶의 저편에서 환상이 되어버릴 수도 있던 가치들을 흔쾌히 집어드는 청년단. 그들이 앞으로 어떤 책을 빼어 들지 몹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