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어디선가 매년 생기곤 했던 커다란 종이 달력. 달이 바뀌고 벽에 걸린 숫자가 제 할 일을 다하면, 종이 낱장 하나는 소년의 차지가 됐다. 종이를 뒤집으면 커다란 세상이 펼쳐졌다. 바닥에 종이를 깔고 엎드려 왼쪽 위부터 오른쪽 아래까지 채워나갔다. 먼저 자신의 이름을 써본다. 전용철. ‘조금 더 반듯이 써볼까? 도장이 생기면 내 이름은 어떤 모양으로 찍히는 게 좋을까?’ 동그라미 안에 이름을 다시 넣어본다. 이번엔 건물을 그려본다. 간판을 그리면 건물에 기능이 생겼고, 문을 그리면 사람이 생겼다. 그의 디자인은 그렇게 낙서에서 시작됐다. 어른이 된 그는 오늘도 낙서를 한다. 달력 뒷면이 아닌 디지털 화면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브랜드와 공연의 이름을. 이번에도 그리면 종이 너머, 화면 너머에서 무언가 실현될 것이다. 하얀 프레임 위, 허락된 평면의 공간에서만 작업하는 것이 답답하진 않은지 묻자, 익숙한 플랫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들이 오히려 재밌다고 말한다. 상상만 하고 시도해보지 못한 것들이 아직도 무궁무진하다고 말하는 그는 오늘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We Show Art, Vistadia

그가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비스타디아는 그래픽 디자인에서 시작되는 모든 활동에서 가능성을 찾는다. 인쇄와 웹을 기반으로 출발해 현재는 공간과 브랜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까지 업무영역을 확장했다. 10년간 다양한 클라이언트들과 오랜 호흡으로 협업해온 덕분에, 잠시 쓰이고 마는 공연 포스터 하나도 브랜딩 차원에서 바라보면 연속성 있는 작업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란문화재단과의 작업이 그렇다. 극장 공간에 이름과 로고를 붙이는 작업에서 시작해 아티스트 육성 프로그램, 작품 개발 지원 프로그램, 기획 공연과 전시까지, 재단이 진행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비스타디아의 디자인을 거쳐갔다. 지금 이 우란 피플 인터뷰의 상징이 된 보라색 프레임 역시 비스타디아의 손길이 닿았다. 처음에는 포스터면 포스터, 도록이면 도록,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만듦새가 훌륭한 단발적인 디자인 작업물을 만들어 내는 데 집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과물이 쌓이고 클라이언트와도 서로의 이해도가 쌓이면서 브랜드를 관통하는 축이 보였다. 그때부터는 종이 낱장 하나가 예쁜 디자인 보다, 작업물로 인해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침해받지 않는, 오히려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나면 포스터 자체의 역할은 끝나지만, 공연을 주관하는 재단과 창작집단의 아이덴티티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가 그림을 그려냈던 달력의 앞면과 뒷면의 역할과 정체성이 다르듯 말이다.






균형을 생각하다

클라이언트가 의뢰하는 작업은 대개 호흡이 짧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변수를 몇 번 마주하는 사이 처음 구상과 달라지는 일은 부지기수다. 전용철 디자이너는 이런 상황에서 주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최대한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편이었다. 클라이언트의 작업이 곧 자신의 작업이며 커리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디자이너로서의 개인적인 미적 욕구와 클라이언트의 만족도를 따로 분리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그의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작년 겨울 앞으로의 작업에 영감을 얻기 위해 떠났던 출장이 그 기점이 됐다.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디자인 스튜디오 네 곳을 방문해 그들의 작업 방식을 직접 눈으로 살폈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클라이언트 업무과 개인 작업을 구분해 균형을 이루면서, 작업 간의 시너지를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클라이언트와의 협의 과정에서 미처 실현되지 못한 디자인 욕구를 개인 작업을 통해 해소했을 때, 클라이언트 작업의 질적 향상도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비스타디아는 작년부터 클라이언트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작업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는 공간을 한남동에 마련했다. ‘스스로에게 몰입한다(Focus On Myself)’라는 뜻을 가진 공간 FOM에서, 그는 물론 비스타디아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오로지 스스로를 위해 작업했을 때 발생하는 몰입의 무한한 잠재력을 다양한 형태로 소개할 예정이다. 나아가서는 자신의 미감에서 완벽하다고 판단되는 작업을 통해 클라이언트의 만족도 얻어내는 시너지도 내볼 생각이다.



정답이 아닌 해답의 아름다움

디자인이 내는 문제에 정답은 없다. 옳은 선의 각도도, 곡률도, 정답이 되는 색상 값도 없다. 그래서 전용철 디자이너는 클라이언트가 문제를 들고 오면, 자신의 심미안을 해답으로 제안하지만 결코 강요는 하지 않는다. ‘제가 백 장의 디자인을 살펴보고 열 장의 디자인을 제시한다고 해서, 클라이언트보다 더 많은 디자인을 보고 경험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도 어쩌면 더 오랜 기간 동안 또 다른 백 개의 디자인 회사에서 제안하는 열 개의 디자인을 봐왔을 수 있잖아요. 그들이 단지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 않다고 해서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듣는 것, 서로의 대화가 쌓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치열한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 선 하나가 되더라도 말이다. 하나의 선, 하나의 오브제, 하나의 색으로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오히려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그의 디자인 아이덴티티이기도 하다. 그 여백으로 인해, 하나의 디자인에서 백 명의 사람이 백 개의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는 디자인, 사유와 대화의 시작을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WHAT DESIGN CAN DO? 

자신의 미감이 정답이 아니며, 나의 감각만큼이나 타인의 미감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앞으로 그가 디자인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할 수 있는, 또 하고싶은 일이 무엇인지 묻자, 디자인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재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가 자기반 학생들이 그린 작품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아이의 작업이 놀랍도록 훌륭했어요. 초등학생이었지만 디자이너로서의 가능성이 보여서 교육 기회를 집중적으로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그 당시엔 너무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미술학원비용이라도 지원해주고 싶었는데, 공식적인 기관이 아니고서는 순수히 디자인 교육을 위해 비용이 지불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겠더라고요. 아이의 부모님 입장에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돕고 싶어한다는 것을 이해하기도 어려울테고요. 그때부터 이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디자인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넘어서, 디자인을 해야 하는데 형편상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디자인 재단을 만들고 싶다고요' 그가 말하는 디자인의 좋은 기능 중 하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이다. 모두의 디자인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용철 디자이너가 사용하는 디자인이라면, 그 기능이 부족함 없이 발휘될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