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공연장에는 테이블 하나만이 놓여있었다. 6개의 의자가 마련되어있는 공간에서 그는 굳이 서있었다. 무언가 더 준비할 것이 없을지를 살피던 중이었다. 바쁘던 눈길은 인기척과 함께 반가운 인사를 준비했다. 인터뷰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지자 그는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필자에게 컴퍼니 매니저라는 직업의 첫인상은 이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공연 계에서는 현장의 엄마, 아빠라고도 불리는 컴퍼니 매니저. 프로젝트의 모든 부분을 신경 쓰는 그 촘촘함 속에서도 넘쳐 보이는 온화한 기운의 비밀이 궁금해졌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인터뷰 순간에도 다른 이들의 즐거움과 편안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람. 커다란 공연장 위에 덩그러니 놓인 단 하나의 테이블이 매일 찾는 카페의 익숙한 자리처럼 편안했던 이유를 컴퍼니 매니저 황만우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모두의 매니저

국내에서 컴퍼니 매니저라는 직업은 아직 개념이 뚜렷하지 않다. 공연 연출, 기획, 제작에 입문하고자 하는 지망생이 어깨너머 일을 배우기 위해 거치곤 하는, 프로젝트의 막내 같은 역할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임무를 확장해 보자면 끝이 없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직업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컴퍼니 매니저가 수행해야 하는 하나의 뚜렷한 목표는 모두가 스스로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즉 모든 이들의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업무의 범위를 스스로 제한하지 않는다. 배우, 연출, 조명, 무대, 음향 등 공연에 필요한 모든 분야가 그의 관심 대상이다. 손이 부족한 파트에 투입되기도 하고, 서로의 대화를 매끄럽게 전달하는 모두의 대변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 한 명 한 명의 생김과 성격이 다르듯, 진행하는 프로젝트마다 신경 쓰고 채워야 할 부분도 다르다. 연습실의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간식을 준비하는 일부터, 혹시라도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를 대비해 보험을 관리하는 일까지. ‘도무지 내가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싶은 순간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게, 조금 더 좋은 공연을 올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해왔을 뿐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모두의 이름을 외우는 것부터, 모두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까지.

 




-짜 사랑하듯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첫사랑의 간절함을 그는 매일 떠올린다. 아주 먼 곳에서도 그 아이가 한눈에 보이던 어린 시절. 그 아이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해주면 좋아할까, 계속 지켜보게 되고, 생각하게 되던 마음. 모든 공연을 대할 때, 함께하는 모든 사람을 대할 때, 그런 두근거림으로 다가서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냥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이 지금 이게 필요하겠구나 싶은 게 보여요. 저도 참 신기해하는 부분인데요.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나가면 , 이 사람 지금 이게 필요해서 지나가는구나싶어, 그걸 건네주면 ! 어떻게 알았어요?” 하며 놀라더라고요.” 그러나 그의 관심과 배려는 지나침이 없다.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적절한 때에 다가가는 세심함만은 풋사랑의 어리숙함과 달리 프로페셔널 해보였다. “마음을 상당히 많이 쓰게 되죠. 뭐랄까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과 연애한다고 해야 하나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고민하는 주제는 의외로 먹을 것이다. 남자친구가, 여자친구가, 남편이, 아내가, 우리 아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오늘은 무엇을 먹고 싶어 할지 우리는 매일 생각한다. 황만우 컴퍼니 매니저는 어느날 문득 도시락만 먹고 있던 공연 준비 인원들에 안쓰러움을 느꼈다. “몇 개월씩 공연이 이어지는 때에는 다들 준비에 여념이 없어서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요. 주로 도시락을 시켜 먹는데, 매일 먹으면 질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다들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때 공연장 앞에 있던 맥줏집 음식이 맛있었는데, 자주 가던 곳이라 사장님과도 자연스레 친분이 생겼죠. 어느 날은 저희 공연팀에 소위 밥차처럼 음식을 제공해주실 수 있을지 조심스레 여쭸는데, 다행히도 흔쾌히 해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덕분에 한동안은 공연장 바로 앞에서 만든 따끈한 집밥 같은 식사를 했어요. 나중에 공연이 끝나고 많은 분들이 공연하면서 이렇게 밥을 든든히 잘 먹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실행으로 얻어지는 자부심

2015년 여름, 대학 졸업 이후로 그는 줄곧 컴퍼니 매니저, 황만우로 살았다. 공연에 대한 애정에 대해 조금 더 덧붙이자면, 그의 대학생활은 온통 연극 동아리 활동뿐이었다. 마지막 등굣길이 불쑥 가까워졌을 때에도, 모두 취직을 고민할 때도 그의 마지막 선택은 공연이었다. “공연과 관련된 일 중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싶어 공연 쪽에서 일하고 계시는 대학 동아리 선배님을 찾아갔어요. 제 성향을 두루 알고 계셨던 분이고, 제 인생의 멘토 같은 분이었는데, 제가 컴퍼니 매니저 역할을 잘 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컴퍼니 매니저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한 작품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 가며, 좋은 컴퍼니 매니저의 모습을 그려나갔다. “컴퍼니 매니저라는 직업이 공연에 관심 있는 사람이 초기에 지나치는 관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전문적인 분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직업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깊어지던 때 만나게 된 우란문화재단은 그가 컴퍼니 매니저로서 가지고 싶어 했던 자부심을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는 만큼 온전히 자신의 일이 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렇게 실행에 옮김으로써 획득되는 자부심을 느끼며 그는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세계 무대에서도 최고라고 불릴 수 있는 컴퍼니 매니저가 되는 꿈을 말이다.

 

필수는 아니더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컴퍼니 매니저로서의 자부심은 직업 자체의 당위를 주장하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컴퍼니 매니저가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냐는 물음에, ‘없어도 공연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답변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없어도 공연은 올라간다. 하지만 좋은 공연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컴퍼니 매니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컴퍼니 매니저가 연출이나 배우처럼 공연에 필수적인 역할은 아닐지라도, 황만우 매니저라면 공연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됐다.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에 집중하지 못한 채 올려진 공연과, 모두가 최상의 컨디션일 때 올려지는 공연은 분명 다른 모습일 거라고 그는 확신한다. “공연에 참여하는 모두가 지금 이 작품을 내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이 들도록 좋은 환경을 만드는 건 사실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지금 내가 아니면 못하는 일들, 손이 많이 가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나서서 해결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남이 보기엔 허드렛일이라고 보일지라도요.” 훗날 컴퍼니 매니저를 전문으로 양성하는 매니지먼트를 꿈꾸며 어떤 커리큘럼이 필요할지도 그려보는 그는, 먼 미래에도 성실한 사람이다. 주어진 환경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살피는 사람.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분명 즐겁고 행복할 것이며, 빛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 역시도 분명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쉽게 그를 찾아올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