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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형 영상감독의 City Scape


 


<중경삼림>의 홍콩, <노팅힐>의 런던, <문라이트>의 마이애미, <괴물>의 서울. 도시 공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유기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들을 떠올려보라. 조신형 영상감독은 도시 속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시각 예술 작품으로 펼쳐 보이고자 한다. 먼 곳을 응시하며 자신이라는 그릇에 다양한 인풋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조신형 영상 감독을 만났다. 



느긋하게 자신을 담금질하는 창작자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한 조신형 영상 감독의 이력은 사진과 영상 분야에 전방위적으로 펼쳐져 있다. 장편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사진 전시를 선보였으며 공연 예술을 영상 기록으로 남겼다. 한불수교 120주년을 기념해 파리 샤이오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종묘제례악> 오프닝 영상 촬영 및 편집, 현대 미술가 박찬경의 미디어아트 작품 <시민의 숲> 현장 스틸, 평창문화올림픽 공식 기록 영상 촬영 및 편집 등 다양한 작업에 참여한 그에게 이 모든 이력을 관통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의 대부분은 개인전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는 일이 많았어요. 하지만 아쉽지 않습니다. 제가 촬영한 <시민의 숲> 스틸 사진이 그대로 전시 포스터가 되는 등 그 자체로 결과물이 되는 경우도 많았고요, 무엇보다 이 모든 경험과 결과물이 앞으로 착수하게 될 제 개인 작품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거름이 될 것을 알거든요. 특히 이번 우란문화재단과의 작업은 더 넓은 범위와 가능성 안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더욱 각별함을 느낍니다.” 맑고 낙천적인 기운을 풍기는 대답을 들으면서 역설적으로 그가 원대한 비전을 꿈꾸는 야심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느긋하고 끈질기게 자신을 담금질하는 외유내강형이랄까. 






세월을 머금은 이야기, 도시에 축적되는 것 


조신형 감독은 지난 10여 년간의 커리어 속에서 창작자로서 추구하고자 하는 모티브를 찾았고 그것은 바로 ‘도시’다. 그런 의미에서 우란1경에서 1월 11일까지 열리는 우란이상 <STORYSCAPE(스토리스케이프)> 연구전시는 그 모티브가 무르익어 발화되기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하게 한 작업이다. 소장품을 매개로 참여자의 연구 주제를 확장하는 이 프로젝트에 서준원 도시공간 연구자가 합류했고 몇 년 전부터 함께 해온 조신형 감독이 기록 영상을 맡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14년 서준원이 ‘공간 잇기-계동‘ 프로젝트를 할 때였다. ‘지역사회와 나’를 주제로 계동의 100년 역사 속에 스며든 지역 주민의 삶을 얘기한 기획 전시를 북촌 일대에서 선보이고 있었다. “공간을 사진이나 영상에 담는 작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멋지게 보여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더 오래 붙잡아 둘까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공간의 이미지, 외형에 더 집중하게 될 수 있는데 작업을 해 나가면서 제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은 외면보다는 그 안에 깃든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울을 탐험하며 도시 공간에 대한 혼자만의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그 여정은 북촌에서 시작되었는데 마침한 영화 칼럼니스트를 통해 서준원 연구자를 소개받았습니다. 서준원 님의 연구는 공간이 시간을 통해 생명력을 갖고 사람들로 인해 이야기와 추억을 머금고 이어진다는 걸 바탕으로 하고 있었어요. 그의 연구와 제 창작의 지향점이 같다고 느꼈죠. 그 이후로 연구자님의 프로젝트에서 사진이나 영상 기록을 담당하며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STORYSCAPE(스토리스케이프)> 연구전시는 홍콩에서 활동하는 독일 출신 사진작가 마이클 울프(MichaelWolf)의 설치 작품 ‘인포멀 솔루션(InformalSolution)’을 탐구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었다. 울프는 홍콩의 초고밀도 도시 뒷골목을 조명해 사진, 영상, 오브제로 시민들의 일상과 삶을 표현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조신형 감독이 제작한 기록 영상은 서준원이 울프의 작품과 마주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Story(이야기)’와 ‘Landscape(경관)’의 합성어인 프로젝트 이름처럼, 재개발과 재건축으로 사라져가는 도심 속 삶의 흔적들을 발굴하고, 사람들의 삶이 도시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어떠한 유기적 상호작용을 통한 변화를 거듭하면서 진화하였는가 그려보는 것, 서준원, 조신형, 마이클 울프 모두의 테마가 포개지는 지점이다. “서준원 님은 도시 연구자로서 각 도시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이야기, 개별적 서사들에 집중해 ‘서울’이라는 도시 공간을 새롭게 모색하고자 해요. 5대째 서울 토박이인 서준원 님 가족사에 기초한 전기적 연구, 그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영상으로 담아내면서 뚜렷한 상이 잡히더라고요. 도시하면 마천루의 회색빛 전경을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뒷골목에서 발견되는 청소 도구의 독특한 배치를 포착한 마이클 울프의 사진처럼 연구자님의 가족사를 쫓으면서 1960년대 말 구의동 양옥집에서 4대가 함께 사는 모습, ‘아파트 키즈’의 ‘마음의 고향’인 개포동아파트 단지 풍경 등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그려졌습니다.” 





비주얼과 스토리의 합일을 꿈꾸며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조신형 영상 감독은 ‘때’를 맞았다. “이제 비로소 나의 작업을 위한 시기가 온 것 같아요. 그 기회를 어떻게 만들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매체에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아요.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고 픽션으로 된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어요. 영화가 될 수도 사진 작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지나온 시간 속에서 휘발되어버린 기억, 정체성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 치열한 도시 생활에 위로를 주는 작품을 어떤 형태로든 선보이고 싶다는 겁니다.” 그가 목표하는 창작의 지점은 그가 이끄는 아티스트 콜렉티브 ‘비주얼로그(Visualog)’의 이름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각예술을 뜻하는 비주얼과 말하기, 대화, 대사를 뜻하는 다이얼로그를 합쳐서 만든 이름. 그가 도시 생활의 화려함과 외로움, 보이는 것과 가려지는 것, 일상과 비일상, 기쁨과 절망 등을 사려 깊은 언어와 비주얼로 구현한 작품을 하루빨리 만나보고 싶다. 



글: 안동선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