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보고 게시글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우리말에서 받침으로 ‘ㅍ’을 쓰는 단어 중 맞춤법에 맞는 것으로는 ‘숲’과 ‘늪’ 같은 말들이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이 단어들을 부러 뒤집어볼 생각을 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무용안무가 조형준과 건축가 손민선은 2014년부터 폼(form)을 뒤집은 ‘뭎[Mu:p]’이라는 이름의 창작 듀오로 활동 중이다. 받침이 없는 언어로 말하자면, 그들은 마감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업무 파트너이기 전에 ‘부부’이기도 하다. 독특한 관계성을 가진 뭎의 조형준, 손민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면도를 바라보기, 머무르며 점유하기
여름의 끝물에서, 인터뷰를 나누는 공간은 두 사람의 작업실이자, 전시공간, 때로는 대관 공간으로도 쓰이는 ‘스튜디오 오픈셋’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의자에 앉는 대신 같은 평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처럼 눈높이를 맞추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중장기창작지원’(현, ‘공연예술 창작주체 지원사업)에 선정된 결과, 원래 모피 가죽을 생산했던 공장이 있던 터가 그들의 작업실이 되었다. 철거하는 과정에서 실내를 채우던 대부분의 부자재들을 비워내고, 가로로 긴 통창을 살렸다. 별도의 조명이 없는 이곳은 언뜻 보기에는 여전히 완성되어가는 중인 공간처럼 보였다. 뭎은 건축적이거나 구조적인 개입이 많이 들어간 게 주요 특징이었던 <오픈셋> 연작을 작업한 후 이곳 또한 그런 환경이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지었다. 지난 해부터 ‘스튜디오 오픈셋’은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사전-시뮬레이션 공간으로서 조건에 알맞은 창작자가 워크샵, 연습, 제작 등의 용도로 24시간 동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대관을 열어두고 있다.
❝연습실을 대여한 창작자는 아무래도 제약이 있거든요. 필요한 물건을 힘들여 가져가더라도 다시 치워야 하고, 다른 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정리해야 하니, 결국은 ‘끊어지는 연습’ 밖에 할 수 없달까요. 물건을 적재하고, 실험하면서,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 한 번도 못해보고 실전에 임하게 되는 팀이 저희 말고도 또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굴려볼 수 있도록 열어둔 것이죠. 원한다면 물건들이 세팅된 상태로 떠났다가 밤에도 자유롭게 와볼 수 있고요.❞(손민선)
뭎의 초기 작업들은 주로 공간의 물리적 특성을 파악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로비 바닥에 일정하게 찍혀 있는 타일을 좌표로 보거나, 미술관의 큰 벽을 경계나 흐름을 만들어내는 상징적인 벽으로 생각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뭎은 기본적으로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공간을 해석할까? 두 사람이 공간을 보는 관점이 섞여 서로 영향을 받는다. 각자의 해석이 더해진다.
❝저는 어떤 공간에 가든 평면도를 요청해서 받아봅니다. 도면화된 걸 위에서 내려다보길 좋아하기 때문인데요. 이 공간에 기둥이 몇 개가 있는지, 사람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 이동할지 하는 것들을 보는 거예요. 형준 씨는 저와 달리 앉아서 실물의 느낌을 봐요. 하루 종일 머무르면서 거기서 뭐가 일어나는지 기다려 보는 거죠.❞(손민선)
❝저는 몸을 많이 사용하던 직업인이었다 보니 기존에 이 공간에 흐르고 있던 분위기가 어떤 식으로 저희 작업에서 이어질지, 아니면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어서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해낼지를 중심으로 봅니다.❞(조형준)
유닛을 한데 모아, 집합체로 진화하는 뭎
뭎의 작업은 2020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 1에서 초연했던 <캐스케이드 패시지(Cascade Passage)> 를 기점으로 변화를 맞이한다. 현상 및 사건이 서사와 묶여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는 단계에 접어든 것. 코로나가 본격화된 기간이라 관객들을 모객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10~20명 내외의 공연예술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이 결정된 공연이었다. 처음에는 극장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기계적인 시스템을 다 사용해서 그곳을 지형처럼 사용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먼저였다. 거기에 서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일어났던 대규모 정전 사태인 ‘캐스케이드’를 접하게 됐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즉, 제약이 오히려 창작을 가능하게 하는 활로가 되어준 것이다.
❝극장을 정전이 일어난 이후 마지막으로 남은 전력으로 가동 중인 ‘재난의 현장’으로 만들어보자는 구상이 생겼죠. 서사가 중요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게 아니라 ‘다크 투어’ 현장을 투어 하는 것이라 말을 바꾸어 보았고요. 우리는 공연을 만든 이들이기도 하지만, ‘M.U.P. Travel’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사처럼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 했어요. 그래서 마치 여행사의 안내처럼 앞사람과 거리를 1m씩 유지하면서 쭉 걸어보라고 요청하는 내레이션을 덧붙이게 됐습니다.❞(손민선)
❝그 이후로도 서사가 공연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더라도, 형식을 묶어주기 위해 좋은 기능을 한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어요. 한 층 더해진 레이어 같은 거랄까요. 사람들이 ‘아, 이거구나.’ 하고 깨닫는 과정을 만들려면, 전체를 관통하는 지점을 만들어야겠더라고요.❞(조형준)
재난 이후의 극장 공간을 체험하는 ‘M.U.P. Travel’은 단편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사후 문제를 다각도로 다루기 위해 설립된 ‘M.U.P. Communication’, 공연 만들기를 통한 배움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는 ‘M.U.P. Education’, 베이글을 굽는 ‘MU:PA’까지, 뭎은 마치 무한 증식되는 유닛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스스로를 유닛의 집합으로 인식할까? 왜 이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이름을 입고 세상에 태어나는 걸까? 조형준은 그것이 의식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는 뭐가 되어야 할까? 이번 공연에서, 이번 이야기에서,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이 공연과 연결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작업마다 저희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중입니다.” 손민선 또한 그들이 최근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있는 테마이자, 공연 만들기를 통한 배움의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는 ‘M.U.P. Education’을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뭎은 공연을 하는데 교육도 해.’보다는 좀 더 영역을 확실히 구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말하자면, 교육 또한 우리가 하는 일 중 하나지만 다른 분들이 보시기에 그 일을 하는 주체가 ‘우리가 아닌 느낌’을 전해주면 좋겠다는 건데요. 가능하다면, ‘M.U.P. Education’과 ‘뭎[Mu:p]’을 별개로 바라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MU:PA’는 무엇일까? 몇 해 전, 뭎이 사람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브런치 클럽을 열고, 베이글을 굽던 어느 장소는 공연전시 예술에 속할 수 없는 곳이자, 전혀 다른 길을 모색했던 시도처럼 보인다.
❝‘뭎[Mu:p]’에 집합체라는 의미를 가진 ‘Associates’의 철자를 붙여서, 이곳이 집합체의 거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MU:PA’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코로나 기간에 예정된 공연들이 취소되면서, 우리 두 사람이 지닌 능력과 기능들을 가시적으로 나열해 본 결과입니다. 여기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 싶은 거였죠. 언젠가부터 이름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요. 그럴듯한 공간을 얻어 두어도 호명할 이름이 있어야만 진짜 공간처럼 다가오는 것 같아요.❞(손민선)
끝말을 잇는 파트너십
두 사람은 평소에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방식이 ‘끝말잇기’와도 같다고 말한다. ‘끝말잇기’는 진행 중일 때에는 양쪽 모두가 재미와 스릴을 느낄 수 있지만, 이것을 그만 멈추고 다음 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때가 온다. 이 중, 마지막 낱말을 던지는 사람은 작업의 실무 단계로 이행하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에서 첫 낱말을 던지는 역할과 마지막 낱말의 운명을 감지하는 역할이 서로 나뉘어져 있을까? 손민선이 먼저, 다른 듀오와의 독특한 파트너십에 대해 들려주었다.
❝실무는 실무의 레이어로도 지나가고 있고, 서로 주고받는 것도 계속 또 하나의 레이어로 지나가는데요. 저희는 이걸 거의 공연 직전까지 합니다. 뭔가를 정해서 ‘이제 됐다’ 하고 만드는 작업에 돌입하는 건 절대 아닌 것 같아요. 어렴풋하게 ‘됐다’ 싶을 때 그 시점에서 정리할 수 있는 것들을 하죠. 타임라인을 그려본다든지, 공간에 설치할 걸 결정한다든지 하는 식으로요.❞(손민선)
이후로는 긴 긴 끝말잇기를 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말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핑퐁처럼 주고받는 모양이 될 때도 있지만, 그저 두 사람의 시야 앞에 계속 공을 던져놓는 것처럼 되기도 해요. 서로 쌓여 있는 것들 중에 무언가를 가져가고 다시 자신의 것을 던져놓는 거죠.❞(조형준)
❝초반에는 프로젝트의 진전이 잘 안 됐어요. 계속 던지기만 하면 이게 맞나 싶으니까요. 그러다 어느 순간,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들이 말이 되게 엮어지기도 하는데, 그때부터는 살을 붙여 가는 작업을 합니다.❞(손민선)
❝그렇지만 언제나 여지를 열어두어요. 항상 무언가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남겨둡니다.❞(조형준)
❝왜냐하면, 실제로 현장에는 너무 변수가 많으니까요. 그걸 받아들여서 다시 시뮬레이션 하고, 첫 공연을 하고 나면 관객들이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되기 때문에, 그럼 내일 두 번째 공연부터는 ‘이렇게 해야겠다’, ‘아니, 저렇게 해보자’ 라는 이야기를 또 주고받는 거죠.❞(손민선)
대화를 관전하다 흥미로운 건 이들이 마감을 정의하는 방식이었다. 바로, "데드라인 시점에 맞춰진 서사가 우리의 작업이 된다. 데드라인이 달랐다면 다른 서사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 두 사람의 합이 잘 맞더라도, 함께 협업하는 상대는 다르게 느낄 수도 있다. 의뢰받는 작업자로서 뭎에게 ‘마감'은 어떤 존재일까?
❝마감이 없으면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죠. 사고나 인식 면에서, 뭔가를 생각한다는 건 끊어지지 않고 죽을 때까지도 쭉 이어진다고 봐요. 그 사이에서 일정 구간을 끊어내는 것이 ‘작업’이고요. 그걸 끊어주는 게 일종의 ‘마감’이랄까요. 그걸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아마 저희는 영원히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만일 허락된 시간이 더 있다면 이야기가 변형될 거예요. 더 붙이거나, 혹은 빼거나. 즉, 작품이 되는 순간, 사고가 끊어지는 순간이 저희의 진짜 데드라인입니다.❞(조형준)
안무가이자 건축가로서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서게 만드는 건 듀오로서 가능한 일이다. 창작 듀오 뭎은 스스로를 어떤 장점을 가진 팀으로 정의할까? 앞선 대화의 연장선상에서, 그들은 다름 아닌 '24시간 동안 계속 작업이 이어지는 게 가능한 사람들'임을 최고로 꼽는다.
❝아예 생활이랑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요. 밥을 먹다가도, 걸어가다가도, 술을 마시다가도 작업 얘기를 해요. 삶이랑 완전 붙어버렸어요. 갑자기 자리를 마련해서 ‘지금부터 고민을 하자. 협업을 시작했으니 미팅 날짜를 정해두고 만나서 얘기하자.’라는 게 아니라 계속 연결되어 있는 거죠.❞(손민선)
우란전시《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비하인드
지난해 뭎이 운영하는 엠유피건축사무소에서는 성수동 밤부-12 타워를 준공했다. 그들은 당시 '좁고 긴 땅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2024년, 전시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가 열린 우란문화재단이 '인도는 적지만 사람은 많은, 어수선하고 또 들뜸이 있는 동네'인 성수동에 있다는 점이 그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을지 모른다. 뭎은 동시대의 ‘성수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손민선은 이런 대답을 들려주었다. "예전에 성수동에 산 적이 있는데요. 예전에 살았던 곳이 어디인지 터는 남아 있지만 맥락이 다 달라졌음을 느껴요. 익숙하면서도 아예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곳이죠."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는 우리 전통음악의 ‘장단’과 그 특징을 다루며, 작가 일곱 명(팀)이 생각하는 개인 또는 상호 간에 발생하는 속도감과 호흡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단체 전시였다. 장단은 기본형의 빠르기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음악과 연주자의 흐름에 따라 즉흥적인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변주 속에서 연주자와 관객은 '호흡을 맞춰가며' 몰아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다. 이렇듯,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Short three times, Long once>는 뭎이 호흡, 속도, 리듬에 대해 고민한 결과다.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Short three times, Long once>는 제 경험에서 출발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숨 쉬기가 힘들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요. 뇌과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간이 스트레스를 빨리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숨을 짧게 두 번 들이 쉬고 길게 한 번 내쉬는 걸 반복하라고 권하는 거예요. 바로 적용해봤더니 그게 저한테는 좀 모자란 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짧은 호흡을 세 번으로 바꿨더니 딱 맞았죠.❞(조형준)
❝그렇게 제목이 먼저 지어진 프로젝트입니다. 저희는 여기에 두 가지의 레이어를 더 만들었어요. ‘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구멍’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거죠. 관람객들이 숨을 다시 쉬어 보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고요.❞(손민선)
❝성수동 거리를 걷다 보면 다들 즐거워 보이는데 왜 나만 이렇게 어영부영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어요. ‘아, 내가 내 호흡을 잘못 찾아서 그런 거구나.’라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제가 뇌 과학 원리를 두 번에서 세 번으로 바꾼 것처럼, 사실 누군가에게는 네 번이 맞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유연함을 이번 전시에서 느끼실 수 있길 바랐어요.❞(조형준)
뇌 과학 전문가의 요법을 개인 맞춤 적용해서 스트레스를 털어내는 건 분명히 유연함이지만, 우리 모두는 변수 앞에서 취약하다. 한없이 유연해 보이는 뭎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변수에 어떻게 대처할까? 이번 전시에서 그들은 원래 이 자리를 전시의 위치로 계획하지 않았으나, 대안을 마련했다는 비하인드를 들려주었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에서 저희는 처음에 가운데에 있는 스크린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초안을 잡았는데요. 팀 단위로 여럿이 이루어지는 전시다 보니 옆 팀의 전시에 방해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그 위치가 좀 힘들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으면서, 다시 어떤 배치가 좋을지 생각해보게 됐고 최종 형태가 나왔어요. 저희는 전시를 할 때 ‘이 자리 아니면 안돼요.’라는 말을 해본 적은 없어요. 예를 들어, 이 자리에 있는 돌을 치울 수 없다면 돌을 빨리 치워달라고 요청하는 대신 다른 방법을 생각합니다.❞(손민선)
뭎은 또한 '퍼포먼스는 특정 시간, 특정 장소를 방문한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포털 같은 것'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이러한 정의는 뭎이 선보이는 작업이 쾌적한 간접 경험들이 가능한 세계에서 절대로 대체될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인상을 전해준다. 실제로 그곳에 방문한 사람이 구멍으로 영상을 들여다보아야 하고, 도어 락의 비밀번호를 입력해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아야만 한다.
❝저희는 전시 기획자로서 장소를 설정하고,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개개인에게 어떻게 시간이 흐를지를 미리 계획합니다. 현실에서 전시의 세계로 들어갈 때 어딘가 삐걱거리거나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갑자기 열리는 포털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전시장에 오기 위해 현실에서 차를 타고, 약속한 시간에 맞게 도착하고, 화장실도 가지만, 전시장에서 문이 열리는 순간에는 저희가 짜 놓은 환경, 배경, 그 타임라인 안에서 같은 시간을 다르게 경험하게 만들고 싶어요.❞(손민선)
❝관객도 작품 안에서 하나의 구성 요소라고 봐요. 작품을 만들면 끝이 아니라, 관객이 들어오는 것까지 해야 완성되는 거죠. 벽, 구멍, 사운드, 서사, 무엇 하나가 중요하다기 보단 이 모든 것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여기 있는 것이 잘 연결돼서 굴러가게 만들고자 합니다.❞(조형준)
❝공연에서는 내가 이 무대 위에서 뭘 봐야 할지를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잖아요. ‘이 벽을 보세요. 이 사람을 보세요. 이 소품을 보세요.’ 같은 게 없죠. 많은 것들이 동시에 일어날 때 내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어떻게 엮어서 보느냐가 중요해요. 전시를 볼 때도 옆 사람이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문을 열지 않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요. 만일, 앞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걸 보면 그걸 따라 들어가 볼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 변수들이 개인의 감상 방법이 되어가는 것이죠.❞(손민선)
뭎의 오랜 희망사항, 사후-무대
뭎은 올해 여름, 웹 플랫폼 <사후-무대>의 첫선을 보였다. 이들은 이 곳에서 '지나간 시간과 공간, 그날의 공기를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사후에 찾아오는 다른 형식의 무대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한다. <사후-무대>의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그럼 이곳에서도 공연을 관람하던 습관을 버리시지 않길 바라며,
1. 길을 찾으려 하지 말 것
2. 모든 희망을 버릴 것
3. 춤을 출 것
-<사후-무대> 소개 중에서❞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공연만을 보는 게 아니라 공연 밖의 요소들과 얽히고 엮여 든다는 점이 이상하지만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중에는 '공연장 바깥에서 어떤 텍스트를 미리 보고 공연에 왔을 때, 우연히 그 텍스트가 공연에서 작동하는 것을 보면서 공연이 끝난 후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떠올려 보는 일'이 있다. 혹은 '공연이 끝났는데도 퍼포머가 사람들 앞에 계속 아무것도 안하고 멈춰 있는 상태로 있을 때, 관객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일'도 포함된다. 이것은 뭎에게 공연 예술의 견고한 '프레임이 깨지는 순간들'이다.
❝보통 ‘사후’라고 하면 무언가의 이후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사후는 언제나 현재를 베이스로 하고 있거든요. 여기서 현재는 공연일 테고요. 그래서 이전과 이후의 시간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시간성이 사후라는 점에서, 앞뒤를 관통시키는 공연의 새로운 형식을 ‘사후-무대’라고 불러보자고 하는 데에 마음이 모인 거죠.❞(조형준)
❝예전에는 공연이 끝나면 모든 게 그냥 증발해 버린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일정 시간이 지나서 종료되면 사라져버린다는 것. 하지만, 미래에서 온 무대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과거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나타난, 혹은 현재에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무대가 될 수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시간성을 뒤섞어 보고 싶었습니다.❞(손민선)
시간성의 개념에 대한 이들의 몰입은 공연 예술을 직접 경험한 사람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향한다. 이들은 지나간 공연의 사진 및 영상을 공유하면 제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이것이 공연을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작동하는가? 어쩌면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오래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든 뭎이 해 온 작업들을 아카이빙 하는 방식은 필요했기 때문에 <사후-무대>를 기획하게 됐다. 이들은 뭎의 공연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뿐 아니라, 공연을 보지 않았는데 그들이 준 단서를 기반으로 추측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을 필진으로 초대했다. 그런 글들이 쌓이는 공간이 바로 <사후-무대>다.
❝공연이 다른 매체와 달리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에서는, 진짜 죽은 사람 비슷한 거예요. 사진도, 영상도, 실제로 그것들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그렇지만 저희의 작업들을 쌓아야 한다면 앞서 말한 기억의 연재 방식이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조형준)
❝작품을 만들어서 내어놓으면 무언가 태어나는 걸 본다고도 할 수 있지만, 공연에서의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되는 동시에 같이 죽거나 아니면 공연의 죽음을 목격하는 이들이 되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는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Short three times, Long once>에 나오는 화면 속의 관객들이 진짜 목격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고요.❞(손민선)
기억에 의존하는 방식은 다채로운 만큼 리스크를 담보한다. 기억이라는 건 사람마다 불완전한 부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뭎은 <사후-무대>의 필진의 기억이 담긴 글과 어떻게 상호작용 할까? 피드백을 주는 역할을 도맡을까? 궁금했다. 그들은 필진의 글을 읽다가 그들의 지난 작업들이 연상될 경우 관련 내용을 콜라주 하는 방식으로 답신을 덧붙인다. 기억은 불완전할 수 있지만, 공연/전시 자료들이 동시에 쌓이는 방식이다. 손민선이 "마치 날파리처럼 스크린을 방해하는 것"이라면서 아카이빙의 방식을 부연했다.
❝<사후-무대>의 필진 글 곁에 답신처럼 연상되는 사진, 영상, 또 다른 글들을 덧붙이고 있어요. 중요한 건 저희의 작업을 먼저 나란히 나열해두고 거기에 설명을 덧붙이는 게 아니라, 모든 게 필진의 글에서 시작되어 저희의 지난 작업들을 아카이빙 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순서가 뒤집힌 거죠.❞(손민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보니 “공연의 주변부나 연상되는 것들까지 포함하는 글”이자 “하나의 공연 혹은 그 이상의 공연으로 겹쳐지며 관통하는 글들이 모이는 장소"를 만들려는 그들의 일은 기존의 공연 리뷰가 가진 한계를 마주한 결과처럼 보이기도 했다. 뭎은 기존의 관객 및 비평가의 공연 리뷰에서는 어떤 점이 더 보완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걸까?
❝사람들의 감상이 새로운 창작물이 될 수 있고, 그건 번역에 가깝다고 보는데요. 한 사람의 생각 안에서 바뀐 결과물 자체가 어쩌면 공연 자체보다도 훨씬 더 가치를 가지지 않을까 싶어요. 미술 작품이나 영화 리뷰는 여전히 유효하죠. 리뷰를 읽고 그걸 찾아서 다시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공연을 보지 않은 분은 사실 글을 읽고서 장면 장면을 매칭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저희에게는 뭎의 퍼포먼스 미관람자에게도 의미를 가지는 글이 필요했던 거죠.❞(조형준)
뭎은 실제로 공연 리뷰 및 크리틱 성격으로 쓰여진 한 편의 글을 마주하며 한계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현재의 뭎이 바라는 것은 창작자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려 애쓰거나, 판단을 쉽게 내려버리는 글이 아닌 다른 무언가다. 그것은 관객의 감상에서 뭔가 더 생겨날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리고 불완전한 기억을 보완하는 새로운 방식의 아카이빙을 통해 창작자로서 다음 작업을 도모하게끔 만들어주는 응원이다.
☑️ 조형준의 구간점프
과거의 어느 날 보았지만 언제든 시간의 흐름을 훌쩍 뛰어넘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란피플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인생작을 소개합니다.
❝어릴 때 프란츠 카프카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무용을 시작하면서 공부를 조금 덜 해도 됐어요. 그래서 시간이 남는다는 기분이 들었는데요. 그 여유 시간에 읽은 거죠. 처음 읽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이 <심판>인데 당시에는 '이거 뭐야?' 하면서 읽었거든요. '카프카가 잘 쓰는 작가인가?'라며 세간의 평가를 믿을 수 없다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한 번 접하고 난 후로는 자꾸 떠올라서 결국 좋아하게 됐어요. 지금은 작업을 할 때마다 알게 모르게 카프카에게 영향을 받아요.❞
글. 서해인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