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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반짝이는 거울의 방 Where We Are Mirr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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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반짝이는 거울의 방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사람을 닮은 형상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사람의 손끝에서 다듬어져 탄생한 이 존재들은 다양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중에서도
꼭두¹와 동자석²은 수 세기의 시간을 건너온 유물이다. 이들을 만든 이름 모를 제작자는 이 형상들이 인간의 영혼을 기억하고 위로하길 바랐을 것이다. 이제 이들은 무덤이 아닌 전시 공간에서 새로운 인사를 건넨다.
전시장을 거니는 동안, 이 형상들은 길동무처럼 우리의 시선을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데려가 이승과 저승을 동등하게 바라보던 선인의 마음을 전해준다. 인간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자신을
닮은 형상을 만들어 육체로는 닿을 수 없는 세계로 대신 보냈었다. 저승의 대리자였던 꼭두와 동자석처럼, 오늘날에도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수많은 형상이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 시대는
변하고 조형의 형태와 방식도 달라졌지만, 인간은 여전히 몸과 감각의 한계 속에서 자신을 대체할 형상을 창조해
미지의 영역을 그려내고 있다.
전시 《끝없이 반짝이는 거울의 방》은 꼭두와 동자석을 현대 미술의 언어로 재해석하며,
인간이 만들어낸 '대리하는 몸'의 의미를 성찰한다. 여덟 명의 현대 작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꼭두와 동자석이 품고 있던 '몸'의 의미를 확장하며, 전시는 이들의 작품이 유물과 마주하는 장이 된다. 저승을 또 다른 삶의 세계로 바라보는 전통적 생명관과 현대의 예술적 감각이 만나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유한한 삶을 초월한 존재의 가능성과 시공간을 뛰어넘으려는 인간 정신의 흐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동행하는 몸
먼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형상인 꼭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들이
첫 번째 흐름을 만든다. 노진아는 꼭두와 인공지능 사이의 유사성을 포착하며, 둘
다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욕망에서 탄생한 '비인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 꼭두를 제작하며 비인간과 인간 사이에 대화의 장을 연다. 이승애 역시 꼭두를 주제로 죽음과 위로에 관한 작업을 펼치는데, 흑연 드로잉과
애니메이션으로 꼭두와 망자가 떠나는 마지막 여정을 그려내며 그들이 향하는 공간의 의미를 탐구한다. 남종현은
꼭두와 동자석의 고유한 미감을 전통 한지 위에 담아낸다. 작가는 꼭두를 수호천사로 생각함으로써 죽음과 연관되어
터부시되기도 했던 꼭두를 구원적 존재로 다시 보는 시선이 담겨있다.
기억하는 몸
이어 물질을 통해 사라져가는 것들을 붙잡고 기억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작업이 흐름을 연결한다. 황수연은 물질이 지닌 신체성을 촉각적으로 다루며, 잊히거나 지켜지지 못한 대상을
모래 조각으로 쌓아 올린다. 축적된 시간을 암시하는 이 모래 조각들은 동자석에 대화를 건네며 상실과 그리움의
시간에 대한 애도를 공유한다. 이한나는 소멸과 망각을 주제로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들을 토우로 형상화한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토우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망각과 기억이 맞물리는 순환의 이치를 드러낸다.
초월하는 몸
전통 기법을 통한 정신적 고양과 영적 성취를 탐구하며 초월적 존재를 만드는 작가들이 마지막 흐름을 이룬다. 박도연은 제주를 지켜온 수호신들의 이야기를 흙으로 재해석하며, 옹중석과 동자석을
제주의 텃밭을 상징하는 흙과 함께 전시해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제주만의 신앙과 일상을 보여준다. 장동수는
조선의 도자 제작 방식을 고수하는 도예가로서, 자신의 작업 여정에 동행하는 정신적 수호신인 장군상을 선보인다. 과거 지붕 위에서 집안의 수호를 담당했던 장군상은 다양한 표정과 자세로 작가의 부적처럼 동행해 왔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와 함께한 축적된 시간을 군상으로 집약해 표현한다. 이경자는
전통 입사(入絲)기법의 맥을 이어가는 장인으로, 작은 정과 망치로 금속 표면을 섬세하게 두드리며 무늬를 새기는 과정은 장인에게 일상의 명상이자 기도와도 같다. 수천 번의 두드림을 통해 완성되는 장인의 조각은 이 반복적 수행을 통해 현세의 번뇌를 초월하는 인간상으로 구현된다.
인간은 언제나 몸을 지닌 존재로서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몸과 세계는 서로
얽혀 있으며, 우리는 오직 몸의 감각을 통해서만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인간이
육체를 벗어나는 저승 같은 세계를 상상할 때조차, 돌봄 받을 몸을 함께 상상했음을 꼭두와 동자석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기술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몸을 매개로 미지의 영역과 소통하려 한다. 인간의 말투를 학습한 인공지능이나 인간 형상을 본뜬 로봇 혹은 조각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낯선 세계와의 소통에서조차 몸을 매개로 삼으려는 마음을 드러낸다. 육체적 형상을
통해 세계와 낯선 것을 연결하려는 이 마음은 자연스럽게 우리 몸의 경계와 정체성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무엇이
나를 대신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나를 기억하게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몸과 물질 너머, 영혼 같은 존재의 가능성과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전시 공간 속 거울은 우리를 비춤과 동시에 또 다른 차원을 상징적으로 열어젖힌다. 전시의
제목 ‘끝없이 반짝이는 거울의 방’³은 이 공간을 상징한다. 작품과 우리가 서로를 비추는 이 공간에서 육체와 영혼, 인간과 비인간, 기억과 망각이 끝없이 반짝이며 반사된다. 이 반짝임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는
형상, 기억 속의 몸, 그리고 현실과 연결된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할
것이다.
¹ 꼭두는 전통 장례의 상여를 장식하는 나무 조각상으로, 죽은 이가 가는 길을 동행하며 저승길 안내와 호위, 재주를 통한 위로, 망자 시중 등의 역할을 맡았다. 이는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자 여행으로
이해했던 선조들의 생명관을 보여준다.
² 동자석은 무덤에 세운 석인상으로, 망자의
안식을 빌고 사후 세계의 생활을 배려하는 후손들의 마음이 담긴 유물이다. 동자석마다 술과 떡, 꽃, 창과 같은 지물을 들고 있어, 죽은
자의 필요와 기호를 살피는 상징적 역할을 지닌다.
³ 김정활, 『ZEN CHAT』(서울: 404 page not
found, 2025), 77. AI는 영감을 어디에서 받는지에 관한 질문에 대한 AI의 대답
중 일부를 가져왔다.
*포스터 이미지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기획 이보영
진행 이소정
참여작가 남종현, 노진아, 박도연, 이경자, 이승애, 이한나, 장동수, 황수연
작품 대여 목인박물관 목석원
공간 디자인 석운동
그래픽 디자인 김정활
홍보 정유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