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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이 담긴 나이테, 유진경 작가





어느 ‘목수(木手)’가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이수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다름 아닌 ‘철수(鐵手)’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우란1경에서의 <그녀의 자리> 연구전시 개막을 열흘가량 앞두고 찾아간 김포의 ‘유진경나무공방'에는 그동안 그가 만들어 온 끌과 대패가 가득했다. 뜨거운 화로에 쇠를 녹이고, 망치로 두드려 담금질하며 그는 ‘머리로는 잘 알지만, 몸은 따라가지 못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쌓아왔다고 했다. 습도가 80% 이상으로 높아져 나무가 최대 팽창하는 여름에는 작업이 도통 어렵지만, 그는 아직도 한여름을 제외하면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작업실을 지킨다. 공예품의 주재료인 나무로 가득한 그곳에서는, 나무의 나이테와 인간의 나이테가 서로 겹쳐 보였다.





어떤 엄마, 어떤 여성 

<그녀의 자리> 연구전시는 우란문화재단 소장품인 지니서 작가의 작품을 시작으로 여성공예작가 5인이 자신의 술 이야기를 나무, 흙, 유리 등 다채로운 물질을 활용해 공예 작업으로 풀어냈다. 관람객들은 공예품과 술이 있는 각각의 자리에 머무르며, ‘나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 먼저, 다섯 작가들(박선민, 박혜인, 유진경, 이혜미, 최수진)은 고영 음식문헌연구자의 진행 하에 집담회를 가졌다. 역사와 문헌 속 여성들의 이야기와 오늘을 살고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가 술을 매개로 이어지는 자리였다.

<그녀의 자리> 연구전시 기획자께서 저를 섭외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각자의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동등하게 들려드릴 생각입니다.” 집담회에 갔을 때, 모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걸 보니 좋았어요. 그동안 제가 다양한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느껴왔던 그룹전 특유의 부침은 전혀 없겠구나 싶었죠.

집담회 이후에는 다섯 명의 작가가 술에 관한 개인적인 기억과 작업계획을 공유하는 작가모임이 이어졌다. 유진경 작가에게 있어 생애 가장 인상적인 술자리는 20여 년 전 회사 바깥 영화 동호회에서 알게 된 열 살 어린 친구와의 여행에 담겨 있다.

둘이서 거창의 달빛마을로 여행을 떠나게 됐어요. 숙소 앞에 조그마한 개울과 거길 건너다닐 수 있는 다리가 있었는데요. 저희가 도착한 날 폭우가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왠지 그 다리 밑에서 저녁을 먹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잔가지를 모아다가 불을 때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앞에 있는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말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어요. 그저 빗소리를 안주 삼아 둘 다 술만 따라 마셨죠. 그 순간에 처음으로 ‘카타르시스'라는 걸 느꼈어요.

그는 언제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조바심을 느끼고 자신을 다그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러다, 그날의 자리에서 처음으로 모든 생각이 멈추었고, 이대로도 괜찮겠다는 기분을 느꼈다. 살면서 한 번쯤 더 경험하고 싶은 순간으로 남았다. 유진경 작가는 <그녀의 자리> 연구전시에 온 관람객들이 자신처럼 “짧지만 온전한 몰입의 시간을 가지게 하는 것"을 전시의 목표로 삼았다. 작품의 구체적인 모티프는 <화전가>에 등장하는 ‘덴동어미'로부터 비롯했다. 불에 데인 아이, 불난 집에서 뛰어나오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누군가의 ‘엄마’로서 지내왔던 시간을 돌아보게 됐기 때문이다.

저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만들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양육 철학이 “그거 안 돼!”라는 말만큼은 하지 않는 것이었달까요. 아이들이 방학에 스킨스쿠버 다이빙, 윈드서핑, 스노보드를 하고 싶다고 하면 다 하게 해주면서, 정작 저는 70프로 이상 할인하는 옷을 사 입었어요.
 
그는 ‘덴동어미' 이야기를 통해 처음으로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랑이 어떻게 느껴졌을까를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상대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주는 대신, 어딘가가 비어 있고 부족하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게 진짜 부모의 사랑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모습을 후회하는 대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을 품어주고자 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이번 전시에서 펼쳐 보이고자 했다.



유진경, <품다 Pumda>, 2022, 오동나무에 낙동법 (사진 서동신) 


‘불멍’이 만들어낸 온기

유진경 작가는 <그녀의 자리> 연구전시에서 오동나무 소재의 원형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고, 이를 <품다 Pumda>라는 이름으로 내어놓기로 했다. ‘원형'을 택한 건 스스로에게도 이례적인 일이다. 사각은 각이 정확히 맞지 않으면 움직일 때마다 유격이 생기면서 헐거워지는데도, 그는 줄곧 사각 형태의 공예품을 고집해왔다.
 
사각형부터 십이각형까지 어떤 형태가 좋을지 하나하나 떠올려봤어요. 그런데, ‘품어준다’는 이미지를 떠올리다 보니 원형만 한 게 없더라고요. 어떤 고비를 맞이하더라도 그 지점을 다시 넘어, 편안하게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바람이 원형에 들어 있어요.





작품의 주요 소재로 ‘오동나무'를 택한 이유 또한 각별하다. 오동나무의 본래 색상은 희끄무레하고 누르면 손톱자국이 남지만, ‘낙동법(烙桐法)'에 따라 불에 태우고 나면 더 눌러도 자국이 나지 않는다. 오동나무의 겉면을 불로 지져낸 후 단단한 무늬결은 남기고 연한 표면은 깎아내는 이 작업 방식은, 유진경 작가의 말에 따르면 “전통목가구 제작기법 중 가장 유니크하면서도 드물게 기록이 남아 있는 기법”이다. <품다 Pumda>의 본격적인 제작에는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마름질에 한 달, 사포질과 모서리를 접는 데에 한 달을 보냈고, 200여 개의 원형 나무를 태우고 벗겨내면서는 오롯이 몰입을 했다. 간혹 묻어두었던 지난 기억들이 떠오를 때 그는 홀로 ‘불멍’을 통해 감정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재료로서 오동나무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온기'다. 실제로, 유진경나무공방에 있는 느티나무와 오동나무를 연달아 만져보니 그 차이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품다 Pumda>의 테이블과 의자에 손을 대어 따뜻한 촉감을 느끼기를 바랐다. 더 나아가, 그 온기가 자기 자신까지 품어줄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주리라고 믿고 있다. 전시 옵션 중 과하주(過夏酒) Bar를 예약한 관람객이라면 마음에 드는 잔을 하나 고른 후 <품다 Pumda>의 의자에 앉아, 이번 연구전시를 위해 양조된 과하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누릴 수도 있다. 의자에 앉은 관객은 상부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는 작가 자신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소중했던 술자리의 기억을 관람객들에게 전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다.




‘유일한 여성 소목장’이 되는 것과 그 이후
 
유진경 작가는 꼬박 10년간 서울에서 바쁜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사회적인 잣대로 보자면, 승진을 거듭하며 인정받는 위치에 다다랐는데 한 번도 일을 즐겁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직장생활의 피로감이 극도로 달했을 때, 그는 “스스로 즐겁게 여기는 일이 직업이 되는 게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후 목수가 되어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그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동시에 어제와 오늘이 거의 다르지 않다. 거기서는 무엇이든 손이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 계속 연습, 연습, 연습한다. 유진경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가장 즐겨 쓰는 말은 ‘맥락'이다. 오늘의 관람객들이 보고 있는 작품을 위해 자신이 어느 시점부터 작업을 시작했는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모든 건 맥락이 이어진 최후의 결과물일 따름이다. 
 
사실, 공예는 창조라는 게 없어요. 창의가 있을 뿐이죠. 비슷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더라도 최대한 다른 걸 만들기 위해, 많은 공예가가 미치도록 반복하고 시도하는 거예요.




2019년, 그는 <여자목수전: 최소의 의자전>의 참가를 제안받았을 때 “이제 내가 여성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다"라고 다짐했다. 그가 목수 생활 20년 차에 접어들었던 때다. 왜 ‘여성'이라는 게 중요했을까. 그는 무형문화재 이수자 과정에 참여했을 시절을 회고한다. 이수자 과정에 참여한 5명 중 여성은 오로지 자신 뿐이었으며, 선생님은 “여자도 하는 데 너희는 그것도 못 하느냐"는 식으로 다른 목수들을 독려했다. 그는 힘에 부치는 순간마다 차라리 자신이 남성 목수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진경 작가는 여러 번의 인터뷰 자리에서 “유일한 여성 소목장이시죠.”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맞는 말이지만 어쩐지 그 말을 듣는 게 싫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여성인 목수를 대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3~4년간 다른 여성 목수들과 교류하는 자리가 늘어나면서 그는 다른 여성 목수들에게서 어떤 아슬아슬함을 보게 됐다. 그것은 자신의 젠더를 지우고 싶을 때 느꼈던 바와 비슷했다. 자신이 목수로서 가지고 있는 역량과 태도가 아니라 단지 ‘여성'이라는 속성이 강조될 때,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 친구들이 용기를 조금이라도 얻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조금 더 허리를 쭉 펴고 여성으로서의 일을 꿋꿋이 오래오래 하는 게, 한마디의 말보다 더 큰 용기가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내가 여성이라는 걸 강조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유진경나무공방에서는 주기적으로 목공아카데미와 원데이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3년간은 쉼터의 가정폭력 피해자 여성들과 목공 치유 프로그램을 가지기도 했다. 끝으로, 자기 자신으로만 남을 수 있는 고독한 시간을 빠져나와 누군가를 가르치는 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저는 제가 누군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함께 걸어 가길 바라지요.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잖아요. 언젠가는 여성들과 함께하는 목공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이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로서 뒤따라 이 길을 가려는 여성들과 함께 오래도록 걸으며 작은 희망을 만들어 가는 그런 학교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글. 서해인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