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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인터뷰 시리즈 우란피플 통해 만나 온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을 드러냈을 때 상대방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게 된 적이 한 번씩은 있을지도 모른다. 15년 가까이 공연 업계에서 일해왔던 김민영의 인사말에는 그런 경험치가 녹아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티켓 매니저입니다. 티켓 매니저는 티켓을 매니징 하는 사람입니다.”라는 말로만 끝나면 좋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시니까 설명이 점점 장황해져요.”
관객에게 보고 싶은 공연을 보기까지의 과정은 종종 전쟁으로 비유된다. 이들은 시간이 남는 지인들을 용병으로 동원하고, 3, 2, 1 카운트다운을 속으로 세며 티켓팅에 참전하지만, 마우스 클릭 한 번만으로 마치 지뢰를 잘못 밟은 듯 예매 사이트 서버가 터지는 걸 보거나, 남아있는 좌석이 하나도 없이 전멸된 예매 사이트의 하얀 풍경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관객만의 일이 아니다. 관객보다 먼저 자주 전쟁과 평화 사이를 왕복하는, 김민영 티켓 매니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티켓 매니저는 하루에 세 시간만 일한다는 착각
기본적으로 티켓 매니저에게 공연은 상품이다. 하나 또는 여러 예매처에 판매하기 위한 상품을 등록한다. 예매처별 판매 현황을 관찰한다. 판매가 저조한 회차가 있다면 판매량을 끌어올릴 방법을 고민하거나, 예매처별로 여석을 재분배한다. 티켓을 추가 오픈할 경우 오픈 일정을 챙긴다. 본공연 개막을 앞두고는 현장으로 향한다. 매표소에서 티켓을 발권하고, 봉투에 티켓을 넣고, 관객에게 배부한다. 보통 공연 시작 후 30분이 지날 때까지 매표소에 상주하고, 인터미션이 있는 공연일 경우에는 인터미션까지 머무르며 관객을 응대한다. 공연 폐막 후에는 매출을 살펴보고, 수수료를 제외한 상품의 순이익을 정산하여 제작사에 공유한다. 책상에서의 업무와 현장을 관리 및 운영하는 업무가 두루두루 조화되어 있는 셈이다.
연극, 뮤지컬, 콘서트, 페스티벌, 전시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티켓 매니지먼트 업무를 해온 김민영에게 뮤지컬을 예로 들어 하루 루틴을 물으니, 이 일은 매일 오전 10시 책상에서 시작되고 공연장을 떠나 귀가하면 오후 10시경이 된다고 했다. 결코, 근무 시간이 짧지 않다.
❝사람들은 티켓 매니저가 티켓 박스에 있는 모습만 보니까, 제가 공연 두세 시간 전까지만 출근하면 되는 줄로 아는 거예요. 오전 오후에도 정말 많은 일들을 해내는데 말이죠.❞
김민영은 공연 기획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6년간 티켓 매니지먼트 전문 대행사에서 일한 후, 현재 프리랜서 티켓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공연을 좋아해서 공연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 쪽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 배우 매니지먼트를 꿈꾸며 연예 매니지먼트 공연 이벤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러던 중 2007년 방학에 뮤지컬 <캣츠> 오리지널 내한 대전 공연 티켓 어시스턴트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게 된다. 아르바이트 경험 이후 예술의전당에서 연극 <신의 아그네스> 티켓 매니지먼트를 서포트한 그는 이 일에 흥미를 느껴 공연 기획사에 입사를 결정한다. 조직 구성원은 대표를 포함해 네 명 남짓. 그는 첫 직장을 주어지는 모든 일에 열심을 다했던 시기로 회상한다.
❝티켓 매니저라는 직무를 가졌지만, 티켓 업무만 했던 건 아니에요. 홍보 프로모션을 기획했고, 회사의 회계도 제가 봤어요. 분기마다 부가세를 신고하고, 인건비를 정리하고요. 매일매일 신기했던 것 같아요. 뭐든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좋았고, 새로운 일들을 흡수하면서 재미있게 일을 했던 시기예요. 이런 기회가 나한테 주어졌다는 게 그저 감사했고, 공연의 어느 한 부분에서 저라는 사람이 잘 쓰이고 있다는 게 마냥 신났어요.❞
그는 지난 15년간 공연장에서 만난 관객들로부터 각종 문의를 받아왔다. 공연 시간이 임박해서 주로 받게 되는 문의는 지연 입장 가능 여부, 할인을 위한 증빙 자료를 가져오지 않았을 때 반드시 차액을 지불해야 하는지 등등이다. “대부분 공연 예매 사이트 상세 페이지에 이미 안내가 되어 있는 내용이에요." 감정적으로 컴플레인을 하는 관객을 응대하는 일은 경력이 쌓여도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김민영은 이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 역량’임을 체감한다. 또한, 그는 티켓 매니저가 관객뿐 아니라 유관 부서인 제작팀, 홍보팀, 마케팅팀과도 끊임없이 의견을 조율하는 협업 주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티켓 박스에서 벌어지는 사소하지 않은 일
김민영은 오후 5시에 극장으로 향하면서 늘 풀 패키지 박스를 지참한다. 원하는 걸 뭐든 꺼낼 수 있는 메리 포핀스의 가방처럼 보였다. 거기에는 티켓을 배부할 때 예매자 이름의 ㄱ부터 ㅎ까지 초성별로, 혹은 할인 유형별로 구분해 놓기 위한 플래그와 티켓이 흐트러지지 않게 묶기 위한 고무줄, 출력된 좌석 배치도를 기준으로 각 예매처들의 판매 건이 중복으로 발권되지 않도록 체크하기 위한 다양한 색상의 펜들, 현금 결제를 하는 관객을 위한 넉넉한 시재금 등이 수납되어 있다. 티켓 박스에서 누군가 묶고, 쓰고, 색칠하는 일련의 행위는 사소하지 않다.
❝이를테면 김민영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회차 공연 3매를 각각 1매씩 예매하신 분이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럴 때는 예매자가 아니라 예매 건이 발권과 배부의 기준이 되거든요. 하나의 봉투에 3매를 넣어두는 게 아니라, 예매 건별로 3장의 봉투로 구분해요. 한 사람이 여러 건을 구매했을 때는 봉투마다 ‘김민영 1’, ‘김민영 2’, ‘김민영 3’ 같은 식으로 봉투 겉면에 기입을 해두고, 예매자 중에 동명이인이 있으면 전화번호 뒷자리 네 자리가 잘 보이게 표시해 놓아요. 또, 재관람 할인, 학생 할인 등의 티켓들을 한눈에 보기 쉽게 준비해야 하고요. 이 박스 하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그에게는 공연이 개막할 때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티켓 박스에 있는 동료들이 나누어 먹을 커피를 주문하는 일종의 리추얼이 있다. 야간 근무를 위한 카페인의 도움도 도움이지만, 실은 여러 잔의 커피를 담는 캐리어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티켓 봉투나 자주 쓰는 물건들을 꽂아 두고 걸어 둬요. 프랜차이즈 카페 캐리어 귀퉁이에 조금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고무줄을 걸어 두면 아주 유용하고요.” 자양강장제 박스 또한 티켓 매니저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물건이다. 티켓 발권기 앞에 놓아두면 티켓이 거기에 규칙적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상자나 케이스를 보면서 여기에 무엇을 담으면 좋을지 떠올려 보며, 실용적인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건 그의 직업병이다. 이뿐 아니다. 김민영은 암전이 되기 직전의 객석 점유율을 천천히 살펴보고는 한다.
❝2층, 3층까지 있는 공연장에 가서 구석구석을 둘러보는데, 중간에 한 줄이 텅 비어 있는 걸 보면 ‘저기는 단체 손님이 안 왔나’ 싶어요. 객석이 예쁘게 꽉꽉 차는 공연장을 보는 게 즐거워요. 제가 업무상 관여하고 있는 공연이 아니라고 해도요.❞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은 그에게 있어 “평온한 곳”이다. “객석 수가 적기도 하지만, 저와 함께 실무를 하는 분들이 티켓 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편이기도 해서요.” 그의 업무 범위에는 작품 모니터링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관객으로서의 관람 경험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민영에게는 모니터링이 조금 더 즐겁게 느껴지는 계기가 있었다고 했다.
❝제게는 뮤지컬 <아일랜더>가 기대감을 가지고 공연을 바라보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객석과 무대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우란2경의 블랙박스 공간을 활용하는 연출이 인상적이었죠. 제가 이렇게 좋은 공연에 티켓 매니저로 참여하고 있음에 대한 자부심과 뿌듯함이 생겼어요. <아일랜더> 이후로도 우란문화재단에서 올리는 작품마다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지는 걸 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모래성이 무너질 때 자신을 지키는 법
첨단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자신의 일이 대체되지 않으리라는 믿음과는 달리, 절망 또한 있었다. 코로나19의 확진자 수 급증에 따라, 2020년 여름부터 약 1년간 연극, 뮤지컬, 콘서트가 벌어지는 국내 공연장의 방역 수칙은 매일같이 변화했다. 티켓 매니저로서 일의 범위가 폭증했다. 좌석 배치도를 업데이트하고, 이미 예매된 좌석을 강제 취소하고, 강제 취소를 당한 관객들에게 ‘다음 티켓 오픈 시 선예매’를 비롯해 제공할 혜택을 빠르게 마련해야 했다. 김민영이 담당한 어느 공연은 열 번 이상의 오픈과 재오픈을 반복해야만 했고, 조기 폐막을 하는 공연도 생겼다.
❝방역 수칙에 따라 ‘퐁당퐁당’(한 칸 띄어 앉기) 했다가 ‘퐁퐁당퐁퐁당’(두 명 앉고 한 칸 띄어 앉기)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취소와 재오픈을 반복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 혹은 완화되면서 ‘실제로 예매할 수 있는 좌석’이 자꾸만 변했던 거죠. 이건 마치 모래성을 쌓았다가 일주일 뒤에 허물고 다른 모래성을 쌓는 일을 반복하는 것과도 같았어요.❞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어렵게 예매했던 티켓을 방역 수칙의 변경으로 인해 강제로 취소당해야 했던 관객들의 컴플레인을 비롯하여 쏟아지는 업무들로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피폐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티켓 매니저로서 하는 일은 체감상 열 배 이상까지도 늘어났지만, 극장으로 유입되는 관객이 줄어듦에 따라 페이가 밀리거나 깎이기도 했다.
❝팬데믹 시대에 공연 일을 하시던 분들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거예요. 이 시기가 오랜 기간 지속된다면 우리 생계가 위협을 받겠구나. 모두가 함께 고통을 받았죠. 실제로 이 시기에 공연 업계를 떠나신 분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완전히 멈추지 않고 굴러갔어요. 저는 떠나는 대신 심적으로 지친 마음을 몇 개월 정도 회복하기 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회복의 방법 중 하나는 요가였다. 김민영은 어떻게 해야 자신이 에너지를 되찾을 수 있을지 알았다. 현장 업무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평일 저녁을 잘 살기 위해 동네 요가원을 2년 가까이 오가던 그는 <아무튼, 요가>의 저자가 개최하는 새벽 팝업 수업에 나갔다가 요가에 더욱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뉴욕에 거주하는 선생님의 집에서 머물면서 수련할 수 있는 프로그램(Advanced Teachers' Training Course)이 열렸다. 그렇게 2019년, 김민영과 지인을 포함한 30대 여자 다섯이 뉴욕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원하는 만큼 양껏 수련에 집중했다. 뉴욕까지 가서 알게 된 요가의 매력은 “매일 같은 시퀀스를 반복하는 게 지루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을지 몰라도, 매일매일 달라지는 느낌과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기쁨"에 있다.
2019 뉴욕에서의 요가 수련
그가 가끔가다 뉴욕 수련행이 남긴 사진과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는 건, 무대 위처럼 스펙터클한 삶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요가 시퀀스를 반복하듯 매일의 생활을 가꾸어 나가야 함을 알아차리기 위함이다. 작품의 막이 내리고, 관객이 공연장을 빠져나가도, 한 사람의 일상은 계속되기 때문에.
☑️ 김민영의 구간점프
과거의 어느 날 보았지만 언제든 시간의 흐름을 훌쩍 뛰어넘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란피플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인생작을 소개합니다.
❝수능이 끝난 10대 후반에, 영화 <엘리자베스 타운>을 보면서 영어 이름을 ‘클레어’라고 지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클레어’는 커스틴 던스트 배우의 극중 이름인데요. 자기 일을 주체적으로 책임감 있게 하는 스튜어디스 캐릭터로, 무슨 일이든 실패하더라도 훌훌 털고 일어나서 다시 하면 된다는 씩씩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어요. 직업인이 되고 나서 다시 이 영화를 보았을 때도 이 여성이 일하고 관계 맺는 모습은 참 본받을 만하다 싶어요.❞
글. 서해인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