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란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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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사진가, 황인철



이번 인터뷰는 평소보다 조금 더 특별하다. 2017년부터 우란피플의 근사한 프로필 사진 촬영을 맡아온 주인공을 만났다. 사진가 황인철은 만나는 사람을 편안하고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 그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며 호방하게 웃었다. 그의 앞에 선 피사체는 누구라도 ‘피식’하고 웃을 수밖에 없게 된다. 우란피플의 결정적 순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는 어떻게 보면 우란문화재단의 시작과 완성 단계를 모두 지켜본 장본인이다. 2018년 개관한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건물의 힘 있는 사진도 그의 손에서 완성되었다. 사실 이 작업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전해준 작업이기도 했다. “제일 재미있게 했던 작업이었어요. 물론 힘들기도 했죠.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반대편 건물 옥상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렸을 땐 정말 아찔했어요. 날씨가 안 좋은 날에는 오랜 기다림도 필요했고요.” 김찬중 건축가가 설계한 아티스틱한 건물 외관을 담기 위해 그는 거침없이 밀고 나갔다. 건물 1층부터 옥상까지 땀나도록 오르내리며 공간을 카메라 속에 담았다. (사진이 궁금한 사람들은 반드시 우란문화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볼 것)


우란문화재단과 맺어온 오랜 인연 

그의 시간은 언제나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패션, 광고, 영화 포스터 등 그야말로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두툼한 포트폴리오를 쌓아온 베테랑 사진가 황인철. 2010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부지런히 한 길을 걸어왔다.
우란문화재단과의 인연은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됐다. 그것은 바로 장인들의 손을 담은 한 컷. “전국의 장인, 인간문화재 분들을 찾아가서 그분들의 모습을 담은 적 있었어요. 저는 인물 사진을 제일 좋아해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행복하거든요. 시시콜콜한 이야기일지라도 사람들과 웃고 대화 나누는 그 순간이 제게는 중요해요.” 성수동에 차린 카페도 결국 사람을 만나고 수다 떠는 것이 좋아서라고. 결정적 순간을 만드는 방식도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진 작업을 할 때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긴장감이 스르륵 풀리면서 원하는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죠.” 2018년 우란문화재단 직원의 ID 카드 프로필 촬영도 기억에 남는 작업 중 하나다. 26명의 사진을 찍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딱딱한 것은 싫었어요. 재미있고 밝은 느낌을 콘셉트를 잡고 사람들에게 각자 좋아하는 소품을 가져오라고 부탁했죠. 그렇게 하면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할 수 있으니까요.” 직원들은 각자의 위트를 발휘해서 커피 우유, 귀여운 장난감, 비눗방울 등 기발한 소품을 가져와서 인생 사진을 남겼다. 





가장 소중한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

황인철 사진가에게 일상은 중요한 일부다. 그는 사진가로 살고 있지만 동시에 카페도 운영하고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일도 하고 하루 24시간을 바쁜 리듬으로 살아간다.  더 많은 경험과 일상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같아요. 평소에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죠. 가능한 다양한 삶을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자서전에서 그런 말을 한적 있어요. 좋은 순간은 비일상이 아닌 일상에서 나온다고요. 저 역시도 일상의 순간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는 두 달 전 불현듯 아침에 항공권을 끊어 일주일 동안 이스탄불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사실은 잊지 못하는 연인과 꿈에 그곳으로 떠나는 꿈을 꿨다나? 정말 영화 같은 일이다. “아무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서 무작정 걸었어요. 걷다 보면 일상 가운데 특별한 장면도 마주할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일도 벌어지죠. 시골 동네를 돌아다니며 계속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좋은 순간은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는 동안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럴 땐 그냥 카메라를 내려놓고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는 사진 작업을 해오면서 그야말로 전 세계를 누볐다. 가보고 싶은 곳은 아프리카 대륙, 그 가운데서도 모로코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꼬불꼬불하고 좁은 골목길. “제기동에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어요. 청량리 주변을 걷다 보면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이 나타나죠. 서울의 사라져가는 골목길은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을 전해줘요. 그런 곳에서 좋은 감흥을 얻기 때문에 평소에 산책을 자주 해요.” 걷는 것을 좋아하기에 지난 1월 우란1경에서 <스토리스케이프> 연구전시를 흥미롭게 봤다고. “제가 평소 좋아하고 관심 있게 보던 주제였어요.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다뤘죠. 그 전시가 기억에 남네요.”

황인철 사진가는 요즘 아파트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 “사실 아파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올리는 과정 자체가 좋게 보이지는 않죠. 그런데 오히려 저는 싫어하는 대상을 예쁘게 찍어서 잘 포장해보고 싶더라고요. 언제 이 작업을 끝낼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파트 사진을 모아서 하나의 큰 프레임 안에 모아보고 싶은데, 어떻게 조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황인철 사진가는 오늘도 계속해서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찾아 길 위로 나선다. “사진으로 최고가 싶다는 생각은 잘 안 해요. 그저 누군가에게 “이쁘다”라고 이야기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사진을 찍고 싶달까요? 일상 가운데서 그런 소중한 순간을 계속 찾고 싶어요.” 인터뷰를 끝마친 그가 자신의 카메라 앞에 앉았다. 해 맑은 미소를 띤 채로. 

글: 김아름
사진: 황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