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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생 공예 작가, 공예 콜렉티브 ‘묘합’의 구성원. 2025년 상반기에 열린 우란전시 《이어지는 사이》에 참여한 김동해 작가, 유남권 작가. 두 사람은 인스타그램 프로필만 보아도 확연히 다른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유남권은 어떤 수식어도 없이 “예술가”라고만 단출하게 써둔 반면, 김동해 인스타그램의 같은 자리에는 ‘평범한 삶의 순간들(Moments of Ordinary Life)’이라는 문구와 함께 나비 이모지가 활보하는 중이므로. 온라인으로 파악한 두 사람의 첫인상은 간편히 말하자면 T와 F. 그러나, “SNS에서 보여지는 게 전부는 아니죠”라고 먼저 단호하게 말한 쪽은 김동해였다.
김동해와 유남권, 너무 달라서 함께 할 수 있는 일: 〈첩첩〉

작품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서로의 대리 소개를 청했다. 이전에 여러 번 협업하며 합을 맞추어온 동료의 소개는 때로 그 예술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정확하게 설명해주기도 하니까.
❝동해는 쑥스러워하는 작업자예요. 자신의 내면에 있는 걸 세상에 드러내기 전까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죠.❞(유남권)
❝남권이는 엉뚱하고 호기심이 많아요. 동양화 전공자라고 하면 이런 성향이 의외로 느껴질 수도 있을테지만, 공상을 자주 하고,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짓는 일에도 능하고요.❞(김동해)
❝저는 그냥 두서 없이 즉흥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웃음)❞(유남권)
❝남권이의 소개에 동의하고요. 제 안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 너무 추상적이라, 타인과 소통할 때 웬만하면 근거를 동원하려고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남에게 표현하는 횟수가 적어져서 ‘쑥스러워하는’이라고 해준 것 같아요. 제게는 자료들을 최후의 순간까지 모아야 한다는 강박 비슷한 게 있어요.❞(김동해)
이번 전시에서 두 사람은 협업 작품 〈첩첩〉을 선보였다. 줄곧 사각 블록, 원 기둥 등을 쌓아 올려와 옻칠의 질감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해 온 유남권은 이번 작품 역시 ‘사각 기둥’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시간은 하염 없이 흐르고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았다. 어느 날, 김동해가 ‘육각 기둥’으로 방향을 틀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건축구조라 여겨지는 벌집, 용암이 급격하게 식은 결과 정교하게 자리 잡은 주상 절리. 김동해가 준비해 온 스케치들을 보자 유남권은 바로 “속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주상절리를 모티브로 삼은 구조물로서의 육각 기둥은 완벽해 보이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실은 스스로 설 수 없어서 불완전하거든요. 그걸 동해가 작업한 장석으로 이어보면, 불완전한 형태를 안전한 구조에 위치시키는 독특한 작업을 해볼 수 있겠더라고요.❞(유남권)
처음 〈첩첩〉을 마주한 관람객은 작품과 자신의 거리를 좁혀 육각 기둥에 칠해진 옻칠의 질감을 들여다보게 되지만, 머잖아 장석의 규격이 다양하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여기에는 열린 구조를 보여주기 위한 두 사람의 의도가 담겨 있다. 육각 기둥은 위를 향해 뻗어 있어 수직적인 이미지가 지배적이므로, 그들을 잇는 장석은 일관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기존의 장석들은 주로 ‘ㄱ자 경첩’으로 각을 만들어 두 대상을 단단하게 고정해 주죠. 그 역할을 답습하면 어느 정도의 완성도는 낼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경계의 해체’ 그리고 ‘자유로운 확장’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저희의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켜 보는 게 중요했거든요. 장석의 기능보다는 조형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김동해)
뿌리와 가지 사이에는 오직 ‘옻’이 있다 : 유남권의 세계

유남권은 《이어지는 사이》에서 〈Stroke〉, 〈Untitled〉를 포함해 신작 〈담의 조율〉을 선보였다. 특히 〈담의 조율〉은 우란1경 수에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정면에 배치되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러 장의 한지에 서로 다른 농도로 옻칠을 해 다채로운 톤과 결의 조화를 보여주는 〈담의 조율〉은 오랜 과거로부터 전수된 도료인 옻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2023년 〈Stroke〉 시리즈를 선보인 개인전 《검은 샘》 직후, 우란문화재단으로부터 전시 합류 제안을 받았을 즈음 유남권에게는 적당한 부담감이 필요했다. 그래서 먼저 신작을 발표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 “우란문화재단 전시는 되게 잘하고 싶었다”는 말을 두 번이나 언급했다.
❝우란문화재단이라는 좋은 단체와 탁월한 큐레이터분들 덕분에 전시 준비 과정이 수월하고 즐거웠어요. 개별 작품마다 소개말이 붙어 있긴 하지만, 저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도슨트를 직접 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큐레이터분들의 노고와 그 과정에서 작가로서 느낀 것들을 관객분들께도 전하고 싶었거든요.❞(유남권)
전시장 내부로 접어들어 마주하는 〈Stroke〉의 소개말은 예사롭지 않다. “예측 불가능한 영역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받아들이기까지는 필연적으로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계획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는 것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그것은 지금의 그에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걸까?
❝옻칠은 종이가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결과물의 톤이 달라지는가 하면, 옻칠 건조장의 온도, 습도, 계절까지도 영향을 받거든요. 그만큼 예측할 수 없는 요소가 늘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는 거고 초반에는 당연히 스트레스가 컸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거기서부터 생기는 가능성들을 보게 됐죠.❞(유남권)

유남권은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옻칠장 박강용 선생을 통해 옻칠에 매혹됐다. “어떤 분야든 처음 배울 때는 과거부터 전수된 전통의 기법들을 한 번쯤은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선생이 요구한 대로 정해진 프로세스 내에서 모든 공정을 다 끝냈을 때의 희열감이 무척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계속 이럴 수는 없을 것 같았어요. 저는 제가 장인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성향이라는 걸 알았거든요. 선생님께 1년 정도 배웠을 즈음, “저는 도제식 교육이 힘듭니다. 서울에서 활동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죠. 그럼 보통 작업실을 나가야 하는 게 수순인데,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저를 이해하고 선생님을 설득시켜주셨어요.❞(유남권)
그렇게 유남권은 10년 가까이 남원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시작한다. 삶의 속도가 다른 두 지역에 작업 터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착지를 하나로 정하지 않는 것. 바로 이 점에서 전시의 타이틀인 ‘이어지는 사이’를 포개어본다. 남원과 서울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내심? 도전 정신?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남원은 제가 옻을 처음 배운 장소이고 제게는 뿌리와 같은 곳이에요. 그래서인지 남원에 가면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남원에서는 이렇게 행동해야 해’하고 세팅하게 되는 태도가 있고요. 반면에 서울은 가지에 가까워요. 제가 남원에서 한 작업들을 외부와 연결하고 더 먼 곳까지 뻗어나가게 하는 통로가 되어주기 때문이죠. 그 사이에는 ‘옻’ 밖에 없죠.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옻’이라는 매개체요.❞(유남권)
사랑이 있는 곳에 소외는 없다 : 김동해의 세계

김동해는 2022년 조선시대 후기 유물인 궁중 책가도와 민화 책가도를 변용한 전시 《BOOKS & THINGS: 물아일체》에 이어 재단과 두 번째로 만났다. 지난 3년간에 뚜렷하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더니, 3년 전에 발표한 〈풍경(Landscape)〉의 작품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과감한 답변이 돌아왔다.
❝‘풍경’을 영어로 번역하면 ‘Landscape’인데, 이건 ‘땅(Land)’과 ‘물이나 뿌리가 있는 식물들(Scape)’을 지시하는 말의 조합이에요. 서구의 관점에서 어떤 대상을 표현할 때 쓰는 지시적인 용어죠. 그런데 제게 ‘풍경’이라는 건 빛과 바람으로 다가와요. 빛과 바람으로 어떤 대상을 표현한다는 게 엄청 근사하게 느껴지고요.❞(김동해)
평소 김동해는 포털 사이트에 단어를 자주 검색한다. 이미 뜻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말일지라도 거듭 사전적 의미와 용례를 확인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두 언어 속 어감의 미묘한 차이를 느낀 김동해가 도달한 결론은 자신이 만드는 작품들이 ‘Landscape’ 보다는 ‘풍경’ 쪽에 더 가깝다는 점이다.
❝금속의 성질에 집중하기보다는 빛, 그림자, 움직임, 식물이 피고 지는 시간의 흐름, 그 사이의 무형의 존재들을 포함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의 작업에도 서사가 있는 풍경, 생태 자체를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고요.❞(김동해)

이번 전시에서 김동해가 선보인 개인작 〈호접지몽〉은 장자의 ‘호접몽’을 모티브로 한다. 내가 나비고 나비가 나라는 오랜 우화. 그렇게 나와 자연과 우주가 모두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다만, 나비를 그리움과 상실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호접지몽〉에 그는 어떤 의도를 담고 싶었을까.
❝이 이야기 속의 ‘나비’는 지금 눈앞에 있는 나비일 뿐 아니라, 멸종 위기의 나비를 포함해요. 제게 멸종 위기의 나비는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소외되는 존재를 상징하고요. 지금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향한 그리움과 상실을 담고 싶었어요.❞(김동해)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자연에서 배우는 디자인’을 가르치는 그는 아카데미에 전시된 다양한 곤충 표본을 접했고, 나비에 대한 관심은 거기서 시작됐다. 김동해의 표현에 따르면 “어느 순간 훅 나비가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2년 전 여름에는 삿포로 여행길에서 수십 마리의 멋진 나비 무리를 접했다. 일본이나 몽골 지역에서는 일부 목격되지만 국내에서는 이미 멸종된 ‘상제 나비’였다.
❝평소에 자주 떠올리는 말이 ‘오직 사랑하는 것들만이 살아남는다’에요. 동명의 영화 제목도 있는데, 저는 온라인 서점에서 미술가 박보나의 에세이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 책 소개 글을 보다가 이 문장을 처음 알게 됐어요.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국 힘없고, 약한 것들과 나도 모르게 멀어질 수밖에 없는거구나 싶어요. 더 열렬히 작은 것들을 들여다보고 공부하고 싶어요.❞(김동해)
그는 공예가 ‘쓰임을 고려한 물건’에 가깝다는 점에서 소외된 존재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자신의 나비 작업은 공예가 목표하는 바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더불어, 자신을 ‘공예가’로 단정 지어도 되는지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자각이 있음을 고백했다. 하반기에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김동해는 〈호접지몽〉에서 보여준 나비를 매개로 한 작업을 기존에 이어왔던 돌과 금속선을 활용한 모빌과 함께 선보이며 자신의 작업을 계속 해나갈 예정이다.
금속과 옻칠. 지난날 각자의 영역에 몰두하던 두 사람은 《이어지는 사이》를 통해 함께 경계를 넘나들었다. 김동해가 전시를 보러 와준 관람객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다.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키워드들이 있잖아요. 공생과 통합. 무엇이든 연결시키고 확장될 수 있다는 걸 이 전시를 만난 분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하나씩 가져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 김동해, 유남권의 구간 점프
과거의 어느 날 보았지만 언제든 시간의 흐름을 훌쩍 뛰어넘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란피플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인생작을 소개합니다.
❝노래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미술도 잘하는 엔터테이너를 좋아하는 편인데 <백현진 쑈: 공개방송>(2023)이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었어요. 최근에 발매된 백현진 씨의 앨범도 재미있게 들었고요. 또, 과거로부터 이어진 재료, 기법을 동시대의 언어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던 제게, 서울시무용단의 <One Dance: 일무>(2024)는 깊은 영감을 주는 공연이었습니다. 정구호 감독님의 무대 연출, 의상, 안무 등을 통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낸 방식과 그 안에서 들여다보게 되는 디테일은 제 작업에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유남권 작가)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에 담아내는 시선과 감도를 좋아해요. 특히 <걸어도 걸어도>(2008)는 잔잔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결국 보는 이의 감정을 더 극적으로 터뜨리게 하는 힘이 있어서 좋아합니다. 엄청나게 거친 파도보다는 고요한 호숫가에 던진 돌 하나가 더 큰 울림을 주는 것과 같달까요. 이 영화에서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가족을 기리는 여름날을 배경으로 하는데, 고인의 기일에 노랑 나비가 날아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나비를 향한 시선이 흥미로웠고요.❞(김동해 작가)
글. 서해인
사진. 황인철


